문학 107

무능자의 아내

김동인 | 도서출판 작은고래 | 1,000원 구매
0 0 250 1 0 23 2017-10-21
1 기차는 떠났다. 어두컴컴한 가운데로 사라지는 평양 정거장이며 한 떼씩 몰려서있는 전송 인들의 물결을 내다보고 있던 영숙이는 몸을 덜컥하니 교자 위에 내던졌다. 그리고 왼편 손을 들어서 곁에 앉아 있는 어린딸 옥순이의 머리를 쓸었다. …

거지

김동인 | 도서출판 작은고래 | 1,000원 구매
0 0 215 1 0 9 2017-10-21
무서운 세상이다. 목적과 겉과 의사와 사후(事後)가 이렇듯 어그러지는 지금 세상은 말세라 는 간단한 설명으로 넘겨버리기에는 너무도 무서운 세상이다. 여는 살인을 하였다. 한 표랑객을……. …

죄와 벌

김동인 | 도서출판 작은고래 | 1,000원 구매
0 0 249 1 0 30 2017-10-21
─ 어떤 사형수의 이야기 “내가 판사를 시작한 이유 말씀이야요? 나이도 늙고 인젠 좀 편안히 쉬고 싶기도 하고, 그래서 사직했지요, 네? 무슨 다른 이유가 있다는 소문이 있 어요? 글쎄, 있을까. 있으면 있기도 하고, 없다면 없고, 그렇지요. 이야기 해보라고요? 자, 할 만한 이야기도 없는데요.” 어떤 날 저녁, 어떤 연회의 끝에 친한 사람 몇 사람끼리 제2차 회로 모였 을 때에, 말말끝에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그 전 판사는 몇 번을 더 사양해본 뒤에,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

만무방

김유정 | 도서출판 작은고래 | 1,000원 구매
0 0 290 0 0 5 2017-09-21
산골에, 가을은 무르녹았다. 아름드리 노송은 삑삑히 늘어박혔다. 무거운 송낙을 머리에 쓰고 건들건들. 새새이 끼인 도토리, 벚, 돌배, 갈잎 들은 울긋불긋. 잔디를 적시며 맑은 샘이 쫄쫄거린다. 산토끼 두 놈 은 한가로이 마주 앉아 그 물을 할짝거리고. 이따금 정신이 나는 듯 가랑잎은 부수수 하고 떨린다. 산산한 산들바람. 귀여운 들국화는 그 품에 새뜩새뜩 넘논다. …

안해

김유정 | 도서출판 작은고래 | 1,000원 구매
0 0 433 1 0 32 2017-09-21
우리 마누라는 누가 보든지 뭐 이쁘다고는 안 할 것이다. 바로 계집에 환 장된 놈이 있다면 모르거니와, 나도 일상 같이 지내긴 하나 아무리 잘 고쳐 보아도 요만치도 이쁘지 않다. 하지만 계집이 낯짝이 이뻐 맛이냐. 제기할 황소 같은 아들만 줄대 잘 빠쳐놓으면 고만이지. 사실 우리 같은 놈은 늙어 서 자식까지 없다면 꼭 굶어 죽을 밖에 별도리 없다. 가진 땅 없어, 몸 못 써 일 못하여, 이걸 누가 열쳤다고 그냥 먹여줄 테냐. 하니까 내 말이 이왕 젊어서 되는대로 자꾸 자식이나 쌓아두자 하는 것이지. …

야앵

김유정 | 도서출판 작은고래 | 1,000원 구매
0 0 289 1 0 4 2017-09-21
향기를 품은 보드라운 바람이 이따금씩 볼을 스쳐간다. 그럴 적마다 꽃잎 새는 하나, 둘, 팔라당팔라당 공중을 날며 혹은 머리 위로 혹은 옷고름 고 에 사뿐 얹히기도 한다. 가지가지 나무들 새에 킨 전등도 밝거니와 그 광선 에 아련히 비쳐 연분홍 막이나 벌여 놓은 듯, 활짝 피어 벌어진 꽃들도 곱 기도 하다. ‘아이구! 꽃두 너무 피니까 어지럽군!’ …

오월의 산골작이

김유정 | 도서출판 작은고래 | 1,000원 구매
0 0 296 1 0 20 2017-09-21
나의故鄕[고향]은 저 江原道[강원도] 산골이다. 春川邑[춘천읍]에서 한 二 十里假量[이십리가량] 山[산]을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닷는 조고마 한 마을이다. 앞뒤左右[좌우]에 굵찍굵찍한 山[산]들이 빽 둘러섯고 그속에 묻친 안윽한 마을이다. 그山[산]에 묻친 模樣[모양]이 마치 옴푹한 떡시루 같다하야 洞名[동명]을 실레라 부른다. 집이라야 大槪[대개] 씨러질듯한 헌 草家[초가]요 그나마도 五十戶[오십호]밖에 못되는 말하자면 아주貧弱[빈 약]한 村落[촌락]이다. …

금따는 콩밭

김유정 | 도서출판 작은고래 | 1,000원 구매
0 0 390 1 0 2 2017-08-21
땅속 저 밑은 늘 음침하다. 고달픈 간드렛불. 맥없이 푸리끼하다. 밤과 달라서 낮엔 되우 흐릿하였다. 거츠로 황토 장벽으로 앞뒤좌우가 콕 막힌 좁직안 구뎅이. 흡사히 무덤 속 같이 귀중중하다. 싸늘한 침묵 쿠더브레한 흙내와 징그러운 냉기만이 그 속 에 자욱하다. 고깽이는 뻔찔 흙을 이르집는다. 암팡스러히 나려쪼며 퍽 퍽 퍽 ─ 이렇게 메떠러진 소리뿐 그러나 간간 우수수하고 벽이 헐린다. …

땡볕

김유정 | 도서출판 작은고래 | 1,000원 구매
0 0 310 1 0 13 2017-08-21
우람스레 생긴 덕순이는 바른팔로 왼편 소맷자락을 끌어다 콧등의 땀방울을 훑고는 통안 네거리에 와 다리를 딱 멈추었다. 더위에 익어 얼굴이 벌거니 사방을 둘러본다. 중복 허리 의 뜨거운 땡볕이라 길 가는 사람은 저편 처마 밑으로만 배앵뱅 돌고 있다. 지면은 번들번 들히 달아 자동차가 지날 적마다 숨이 탁 막힐 만치 무더운 먼지를 풍겨 놓는 것이다. 덕순이는 아무리 참아 보아도 자기가 길을 물어 좋을 만치 그렇게 여유 있는 얼굴이 보이 지 않음을 알자, 소맷자락으로 또 한번 땀을 훑어 본다. 그리고 거북한 표정으로 벙벙히 섰 다. 때마침 옆으로 지나는 어린 깍쟁이에게 공손히 손짓을 한다. “얘! 대학병원을 어디루 가니?” …

봄과 따라지

김유정 | 도서출판 작은고래 | 1,000원 구매
0 0 305 1 0 19 2017-08-21
지루한 한 겨울동안 꼭 옴츠러졌던 몸뚱이가 이제야 좀 녹고 보니 여기가 근질근질 저기가 근질근질. 등어리는 대구 군실거린다. 행길에 삐쭉 섰는 전봇대에다 비스듬히 등을 비겨대고 쓰적쓰적 비벼도 좋고. 왼팔에 걸친 밥 통을 땅에 내려놓은 다음 그 팔을 뒤로 젖혀올리고 또 바른팔로 다는 그 팔 꿈치를 들어올리고 그리고 긁죽긁죽 긁어도 좋다. 본디는 이래야 원 격식은 격식이로되 그러나 하고 보자면 손톱 하나 놀리기가 성가신 노릇. 누가 일 일이 그러고만 있는가. 장삼인지 저고린지 알 수 없는 앞자락이 척 나간 학 생복 저고리. 허나 삼 년간을 내리 입은 덕택에 속껍데기가 꺼칠하도록 때 에 절었다. 그대로 선 채 어깨만 한번 으쓱 올렸다. 툭 내려치면 그뿐. 옷 에 몽클거리는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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