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107

소낙비

김유정 | 도서출판 작은고래 | 1,000원 구매
0 0 249 1 0 20 2017-07-21
음산한 검은 구름이 하늘에 뭉게뭉게 모여드는 것이 금시라도 비 한 줄기 할 듯하면서도 여전히 짓궂은 햇발은 겹겹 산속에 묻힌 외진 마을을 통째로 자실 듯이 달구고 있었다. 이 따금 생각나는 듯 산매들린 바람은 논밭간의 나무들을 뒤흔들며 미쳐 날뛰었다. 뫼 밖으로 농군들을 멀리 품앗이로 내보낸 안말의 공기는 쓸쓸하였다. 다만 맷맷한 미루나 무숲에서 거칠어 가는 농촌을 읊는 듯 매미의 애끊는 노래……. 매―음! 매―음! …

김유정 | 도서출판 작은고래 | 1,000원 구매
0 0 198 1 0 15 2017-07-21
들고나갈거라곤 인제 매함지와 키쬬각이 있을뿐이다. 그 외에도 체랑 그릇이랑 있긴 좀허나 깨여지고 헐고하야 아무짝에도 못슬 것이다. 그나마도 들고 나설랴면 안해의눈을 기워야 할터인데 마즌쪽에 빠안이 앉었 으니 꼼짝수없다. 허지만 오늘도 밸을 좀 글거놓으면 성이 뻐처서 제물로 부르르 나가버리리 라 ─ 아랫목의 근식이는 저녁상을 물린뒤 두 다리를 세워안고 그리고 고개 를 떨어친채 묵묵하였다. 왜냐면 묘한꼬투리가 있슴즉 하면서도 선뜻 생각 키지 안는 까닭이었다. …

심청

김유정 | 도서출판 작은고래 | 1,000원 구매
0 0 209 1 0 21 2017-07-21
거반 오정이나 바라보도록 요때기를 들쓰고 누웠던 그는 불현듯 몸을 일으 켜가지고 대문 밖으로 나섰다. 매캐한 방구석에서 혼자 볶을 만치 볶다가 열병거지가 벌컥 오르면 종로로 튀어나오는 것이 그의 버릇이었다. 그러나 종로가 항상 마음에 들어서 그가 거니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 다. 버릇이 시키는 노릇이라 울분할 때면 마지못하여 건숭 싸다닐뿐 실상은 시끄럽고 더럽고 해서 아무 애착도 없었다. 말하자면 그의 심청이 별난 것 이었다. 팔팔한 젊은 친구가 할일은 없고 그날그날을 번민으로만 지내곤 하 니까 나중에는 배짱이 돌라앉고 따라 심청이 곱지 못하였다. 그는 자기의 불평을 남의 얼굴에다 침 뱉듯 뱉아 붙이기가 일쑤요 건뜻하면 남의 비위를 긁어놓기로 한 일을 삼는다. 그..

연기

김유정 | 도서출판 작은고래 | 1,000원 구매
0 0 264 1 0 16 2017-07-21
눈 뜨곤 없드니 이불을 쓰면 가끔식 잘두 횡재한다. 공동변소에서 일을 마치고 엉거주침이 나오다 나는 벽께로 와서 눈이 휘둥 그랬다. 아 이게 무에냐. 누리끼한 놈이 바루 눈이 부시게 번쩍버언쩍 손가 락을 펴들고 가만히 꼬옥 찔러보니 마치 갓굳은 엿조각처럼 쭌둑쭌둑이다 얘 이눔 참으로 수상하구나 설마 뒤깐기둥을 엿으로빚어놨을 리는 없을텐 데. 주머니칼을 끄내들고 한번 시험쪼로 쭈욱 나리어깎아보았다. 누런 덩어 리 한쪽이 어렵지 않게 뚝떨어진다. 그놈을 한테 뭉처가지고 그앞 댓돌에다 쓱 문태보니까 아 아 이게 황금이아닌가. 엉뚱한 누명으로 끌려가 욕을 보 든 이 황금. 어리다는, 이유로 연홍이에게 고랑땡을 먹든 이 황금. 누님에 게 그 구박을 다받아가며 그래도 얻어먹고 ..

봄봄

김유정 | 도서출판 작은고래 | 1,000원 구매
0 0 336 1 0 42 2017-07-21
“장인님! 인젠 저…….” 내가 이렇게 뒤통수를 긁고, 나이가 찼으니 성례를 시켜 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면 대답 이 늘, “이 자식아! 성례구 뭐구 미처 자라야지!” 하고 만다. 이 자라야 한다는 것은 내가 아니라 장차 내 아내가 될 점순이의 키 말이다. …

동백꽃

김유정 | 도서출판 작은고래 | 1,000원 구매
0 0 330 1 0 23 2017-07-21
오늘도 또 우리 수탉이 막 쫓기었다. 내가 점심을 먹고 나무를 하러 갈 양으로 나올 때이었 다. 산으로 올라서려니까 등뒤에서 푸르득푸드득, 하고 닭의 횃소리가 야단이다. 깜짝 놀 라서 고개를 돌려보니 아니나다르랴, 두 놈이 또 얼리었다. 점순네 수탉(은 대강이가 크고 똑 오소리같이 실팍하게 생긴 놈)이 덩저리 작은 우리 수탉 을 함부로 해내는 것이다. …

산골

김유정 | 도서출판 작은고래 | 1,000원 구매
0 0 209 1 0 25 2017-07-13
머리 위에서 굽어보던 햇님이 서쪽으로 기울어 나무에 긴 꼬리가 달렸건만 나물 뜯을 생각 은 않고, 이뿐이는 늙은 잣나무 허리에 등을 비겨 대고 먼 하늘만 이렇게 하염없이 바라보 고 섰다. 하늘은 맑게 개고 이쪽저쪽으로 뭉글뭉글 피어오른 흰 꽃송이는 곱게도 움직인다. 저것도 구름인지 학들은 쌍쌍이 짝을 짓고 그 새로 날아들며 끼리끼리 어르는 소리가 이 수풍까지 멀리 흘러내린다. 갖가지 나무들은 사방에 잎이 욱었고 땡볕에 그 잎을 펴들고 너훌너훌 바람과 아울러 산골 의 향기를 자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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